제목
:
단계의 애석세계(3)



그는 세 번째 단계로써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는 세계로 승화한다. 점점 마음 속의 돌, 즉 "心石"의 경지에만 몰입한다. 이 "마음의 돌"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려져 있는 산수화 같은 어떤 그림 속에 돌 하나를 마음 속에 그려 보아라. 그리하면 마음 속의 돌은 가능해진다." 하고 가르친다.

그리고 스스로 돌을 갖고 있지 않지만 마음 속의 돌을 향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드높은 神宣의 경지를 누리는 것이다.

"내가 돌을 사랑함에 있어서 반드시 그 돌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돌을 향하여 禮를 베푸는 것으로서 족하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돌은 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눌 수가 있으며, 비록 돌 자체가 말은 없어도 그 목소리를 淸風처럼 듣는다." 하였다.

丹溪의 뒤에 산 사람인 "앙드레 브르똥"(1896~1970년.프랑스의 시인.쉬르레아리즘의 주창자)은 "돌들은 - 그것도 굳은 돌들은 잘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부단히 말을 걸어 온다.

듣는 사람은 제각기에 응하여 돌들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서 알고 있는 것을 통하여 돌들은 듣는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돌들 가운데서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 있다. 그리고 그들을 한번 가까이 해주면 돌들끼리의 나누는
대화의 모습을 보는 것까지 가능하다"하고, 물형석류를 제시해 보이며 말한바 있다.

이러한 세계를 돌 한 점 없이 마음 속의 돌을 향한 鄕愁로써만 충분히 누린 것이 丹溪의 愛石이다. 丹溪는 愛石의 哲人이오, 哲人으로서의 愛石에 몰입하여 스스로를 승화시킨 것이다. 탐욕이 없는 愛石, 愛石의 이상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불 태우는 가운데 돌 한 점 없이도 멋진 
自然風流를 누린 것이다.

秋史가 愛石한 사람이었지만 "秋史公의 禮堂에는 세 개의 돌이 있었는데, 뒷날엔 이리저리 흩어져 관심밖에 놓여져 있었다."고 한 禮石記의 기록은, 돌을 달라고 하는 것을 절대 응하지 않던 秋史가 이윽고는 "마음 속의 돌"에서 희열과 감동을 불러보며, 바로 丹溪의 경지와 같은 세계를 진작에 미리 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추단도 내려보게 된다.

丹溪는 이렇게 말한다. "돌은 돌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石精(돌의 精神)을 지녔으며, 이것이 
天上에 올라 있다면 明月이 되어져 그림자 속의 사람을 비쳐줄 것이다." 위에서 丹溪의 愛石를 해설한 문장을 다시 살펴 볼적에, 우리들의 수석취미 생활에 교훈을 주는 바가 매우 크며 필히 본 받아야 할 경지라고 생각한다.

-- 끝 --


 

되돌아가기 그림, 전페이지로 되돌아가기